작은 위로, 큰 능력
- 목자
- 2019년 7월 15일
- 1분 분량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지역 자치제’가 잘 되어 있어서, 주에서 다른 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주를 옮겨서 이사를 하게 되면, 모든 행정 시스템을 다 새롭게 바꾸고 셋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병원을 찾고 의사를 정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렵습니다. 여기에 이사와서 10개월만에 집사람 암수술했던 분야에 주치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집 근처에서는 찾기 어려워서 집에서 40분 떨어진 곳에서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워낙 병원을 찾고 의사를 만나는게 쉽지 않아서, 별 기대를 갖지 않고 만났습니다. 이름이 캐런이라고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백인 여자였습니다. 인상도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서로가 인사를 하고, 있었던 병력에 대해서, 수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가 가졌던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가 우리를 향해서 말 한마디를 건낼 때마다, 질문을 하나 할 때마다, 얼마나 우리를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지 수술했던 그 부분만이 아니라, 혹시라도 우리가 힘겨운 상황에 있지는 않는건지, 묻는 섬세한 물음 속에서, 안그래도 울음이 많은 제 마음에 깊은 위로와 격려가 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울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 그 사람을 격려하고 건강하게 세운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어렵거나 멀리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그 사람의 상황을 아무런 판단없이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비록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그 삶 가운데 함께 있을 때, 그게 능력이고 그게 위로가 되고, 결국 그 힘이 서로를 일으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다루십니다. 언제나 우리의 문제를 기적과 같이 ‘짜잔’하고 해결해 주시지 않지만, 어떤 문제와 상황 속에서도 함께하시고 격려하시고 또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안타까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격려와 사랑이 풍성하게 일어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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